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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사람마씸] “이젠 동네 사람이 먼저 알아보던데요?”_서귀포정신건강복지센터장 오대영

작성자
siul
작성일
2022-07-16 08:17
조회
1329





“이젠 동네 사람이 먼저 알아보던데요?”

오대영 서귀포정신건강복지센터장



‘서귀포 사람’이다. 그 기준이 뭘까. 서귀포에 사는 사람? 아니면 서귀포를 아는 사람, 조금 더해 서귀포를 사랑하는 사람 등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사람이 가능성이자 경쟁력인 상황에서 조금만 연결고리 있어도 우리 편을 외칠 판이다. 일단 서귀포 사람이라고 해놓고 보니, 자꾸 뭔가 모자라고 부족한 것 같다. 간지러워 미치겠는데 손이 닿지 않는 등의 어느 부분처럼. 그런데 우연히 아주 쉽게 답을 찾았다. ‘동네 사람들이 알아보는 사람’. 아, 그렇다. 내가 잘 모르는 사이 주변에서 먼저 알아보는 사람, 그 사람이 서귀포 사람이다.



서울 출신 오대영 서귀포정신건강복지센터장(시울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2015년 서귀포로 ‘살려고’ 왔다. 흔한 제주살이와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학위를 이수하고 전임의를 거쳐 교수까지 목표를 향해 정신없이 달리다가 순간 번 아웃이란 것이 왔다. 주변에서, 특히 환자들에게서나 봤던 상황을 직접 대하면서 생각할 것이 많아졌다. 가족이란 관계가 느슨해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보태졌다. 그때 무슨 운명처럼 ‘고라니’를 만났다.

“먼저 제주로 이주한 지인의 SNS 프로필에 가족사진과 함께 고라니가 있더라고요. 일부러 찍으러 간 것도 아니고 그냥 동네에서 봤다는 설명에 눈앞이 번쩍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 이렇게 살고 싶다, 이렇게 살 수 있구나.”

가벼운 미소로 그때를 회상했지만, 그가 꺼낸 ‘살다’의 메시지는 특별했다. 언제고 돌아갈 것을 생각했다면 ‘공항에 가까운 곳’을 선택할 만도 했지만 별 고민 없이 서귀포로 주민등록을 옮겼다. “왜 서귀포를 선택했냐는 질문이 가장 어렵다”는 그다.

서귀포 이주 결정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은 그의 행보다. 제주로 삶터를 옮긴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적당히 자신의 시간을 즐기고 필요한 만큼만 관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는 요청에 반응했다. 사례 관리를 하는 지역 활동가와 공무원들에게서 날라 온 ‘한번 살펴봐 주시면 좋겠다’는 SOS를 허투루 놓치지 않았다. 본업이 있었지만 짬을 내서 지역 사람들을 만나고 지역 문제를 마주하게 됐다. 인적 자원이 한정적이다 보니 짬을 내야 할 일이 늘었지만 그런 상황을 후회한 적은 없다.



2019년 서귀포정신건강복지센터가 문을 열며 센터장 역할을 제안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몸에 맞는 옷을 찾은 것처럼 흐름을 탔다.

서귀포정신건강복지센터는 말 그대로 정신건강과 복지를 연결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처음에는 복지라는 단어 없이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지원하는 일을 했지만 몇 년 전 정신병과 관련한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복지적 관점에서 전문가를 통해 사례 관리를 하는 역할까지 부여됐다.

‘정신질환’이라는 영역은 사회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병으로 인한 어려움도 있지만, 그로 인해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흔하다. 심리정서적 관리 외에도 치료와 관련한 정보와 금전적 지원을 하는 일도 수행해야 한다. 특히 병을 이해하지 않으면 돕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오 센터장은 “다른 사업들과는 달리 대상자를 오래 만나는 일이다. 오랜 기간 살피고 알아가면서 그 가족들까지 만난다. 그만큼 다양한 경우들을 접하게 된다”며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 진중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예상 못 한 위기군이 갑자기 나타나거나 접근하기 어려워 힘들었다면 엔데믹이라는 지금은 ‘정서적으로 지쳐 있는 상황’이 위험한 돌발 변수가 되고 있다.

그의 걱정은 일상생활에서 찾은 것들이어서 더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간다.

오 센터장은 “태어나 이제까지 살면서 ‘지역사회’라는 단어를 직접 느끼고 체험한 것은 서귀포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또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거기서 ‘우리 동네’는 내가 살고 있는 주소지 이상은 아니었다”며 “여기서는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 외에 이들과 내가 연결돼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한 일이나 선택이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특별하다”고 덧붙였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내가 무엇을 할 때 그 결과가 이렇게 나오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수록 서귀포 사람이란 소속감이 커진다. 오 센터장이 슬쩍하고 내뱉은 ‘육지’라는 단어가 이렇게 정겨울 줄이야.

“다른 곳에서는 보지 않았던 것들이 여기서는 보인다. 뭐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냥 그렇게 됐다. 진료실을 나왔는데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제주시 가는 것이 힘들어서 가기 싫다는 말도 나온다. 그렇게 서귀포에 스며들어 있더라.”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그런 그는 요즘 아동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다.

지역사회의 여러 사례를 접하다 보니 ‘작다’는 서귀포의 특징이 하고 싶은 일을 만들었다.

오 센터장이 말한 ‘작다’의 의미는 공간이나 면적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복지 측면에서 선택과 집중, 시너지 극대화가 가능한 여력이 있다는 얘기다. 지역 인력풀이 제한된 상황에서 오 센터장은 아동보호나 학교·가정폭력 등 여러 사례에 두루 참여하고 있다. 그렇게 만난 사각에 몰린 아이들은, 이전 진료실이나 학교 요청으로 상담하러 갔다가 만난 아이들이기도 했다. 내 어려움을 누가 알겠어 싶지만 누군가는 알고 있고, 전문적으로 도울 수 있는 전문가가 많지 않아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다른 표현인 셈이다.

아이의 문제가 가족의 문제로 다시 사회 문제로 커지는 과정도 종종 목격했다. 지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역할에 대한 고민은 아동 청소년 집중 지원으로 방향으로 잡았다.

현장 전문가로 앞으로 더 살피고 채웠으면 좋을 부분을 물었다.

예상외의 답이 돌아왔다. “오래 사셨던 분들은 더 크게 느끼겠지만 원도심과 신시가지의 차이를 제대로 살폈으면 한다.”

초등학교를 기준으로 원도심과 신시가지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의 비율이나 성격이 다르다 보니 교육복지사나 상담교사의 업무량·사례 관리 등에 대한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꼽았다. 사회경제적 환경도 다르다 보니 접근법도 달라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들췄다. 아이들 문제를 들여다보면 부모와 지역사회의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도 많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은 표현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아 티가 나지 않을 뿐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 중·고등학생들이 청소년상담센터를 찾는 과정에서도 보다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으면 좋겠다.”

현장에서 느낀 아쉬움과 지역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부분이다. 센터의 장 역할을 맡으면서 직접 사례 관리를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 동네니까 둘러보는 것”이라고 했다.

자살률 전국 2위라는 서귀포의 아픈 상처를 살피고 몇 번 더 호 하고 불어줄 수 있기를 바랐다.

찾아가는 일은 짬을 내 하지만 찾아오는 일은 누가 억지로 할 수는 없다. 오 센터장은 “센터를 찾기까지 내 얘기를 남에게 하는 것도 힘들고, 내가 정말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망설이게 된다”며 “중요한 것은 여기는 비슷한 상황에서 누군가 어떻게 이겨냈고,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내 얘기를 하는 것, 또 누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약이 된다. 두려움을 떨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마음의 문턱부터 차분히 넘을 것을 조언했다.

또 하나의 문턱 얘기도 했다. “묵묵히 뒤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경우도 있지만, 누군가를 돕고 후원하는 것을 많이 부끄러워 하는 편”이라며 “둘러보면 아이들이나 어르신, 삶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까지 후원할 수 있는 기관이 많다. 그런 곳들에 관심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줬으면 좋겠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참 얘기를 나누다 보니 처음 했던 ‘살려고’ 서귀포에 왔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그가 말한 ‘살다’는 거주하다는 의미에 더해 생존, 살고 싶다는 의지가 보태진 단어였다. 지역에서 제대로 자기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삶의 의미를 찾은 셈이다. 그의 마지막 당부를 정리하면 “동네 일인데 같이 하자”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다시 고라니 얘기로 돌아온다. “처음 센터장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누군가의 고라니였으면 좋겠다”는 동화 같은 바람에 오 센터장은 “고라니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냐?”고 반문했다.

이어 말했다. “한밤중에 누가 싸우는 줄 알았다. 괴로울 정도지만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다. 나를 서귀포에서 살게 한 고라니만큼은 아니지만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서귀포를 사랑한다면 누구든 새겨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내겠다. 그런 ‘고라니’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출처: 서귀포시 시정뉴스 '서귀포사람마씸'
출처: https://www.seogwipo.go.kr/news/seogwipo-news/people.htm?act=view&seq=131599072